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안 라이트 (문단 편집) ==== [[크리스탈 팰리스 FC]] ==== 크리스탈 팰리스의 스카우터 피터 프랜티스는 1985년 초순에 라이트가 아마추어 팀에서 활동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에게 위대한 선수로 대성할 잠재력이 있음을 파악하고 그에게 트라이얼을 받을 기회를 줬다. 라이트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이 기회를 잡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1985년 8월 22세의 나이에 크리스탈 팰리스에 입단하면서 뒤늦게나마 본격적인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진가를 드러냈다. 1985-86 시즌에서 리그에서만 32경기에 출장하여 9골을 넣었는데, 이 기록은 팀내에서 2번째로 많은 골 기록이었다. 이후 그는 마크 브라이트와 투톱이 되어 서로 성공적인 팀워크를 발휘하여 팀을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그러나 아쉽게도 크리스탈 팰리스는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1부리그 승격은 좌절되었다. 이후 라이트는 1987-88 시즌엔 리그 41경기 20골, FA컵 4경기 3골 등 총 45경기 23골을 넣으며 팀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또한 1988-89 시즌엔 리그 42경기 24골, FA컵 3경기 1골을 기록하며 총 45경기 출장하여 25골을 넣었고 크리스탈 팰리스는 그의 활약에 힘입어 마침내 1부리그에 승격했다. 이러한 활약은 그가 잉글랜드 국가대표 B팀에 뽑히게 해줬지만 다음 시즌에 정강이뼈를 두번이나 다치는 바람에 국가대표 데뷔는 좌절되었다. 하지만 라이트는 좌절하지 않았고 부상에서 회복한 뒤 복귀전인 1990년 FA컵 결승전에서 '''슈퍼 서브'''로서의 역할을 했다. 당시 크리스탈 팰리스는 맨유와의 FA컵 결승전에서 정규시간이 다 지날 무렵 3:2로 지고 있었다. 이때 라이트는 막판에 투입되었고 곧바로 왕성한 활동량과 주력을 선보이며 상대 수비진을 유린했고 마침내 경기 종료 1분전에 극적인 골을 넣어 팀의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팰리스는 정작 재경기에서 맨유에게 1:0으로 패하고 말았다. 그 다음 시즌인 1990-91시즌, 그는 지난 시즌보다 훨씬 나아진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는 리그 38경기 15골, FA컵 8경기에 4골을 기록하며 종합 46경기 19골을 기록했다. 라이트는 이 시즌에 크리스탈 팰리스에서의 통산 100골을 달성했다. 이후 1991-92 시즌 개막 후 8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역시 탁월한 경기력을 선보이던 중, 그를 눈여겨 보던 [[조지 그레이엄]] 아스날 감독이 1991년 9월에 라이트를 25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급하고 영입했다. 라이트는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253경기에 선발출전하고 24경기를 교체 출장하며 117골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크리스탈 팰리스 역사상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골 기록이었고 팀의 전체 역사로 따져봐도 3번째로 많은 기록이었다. 크리스탈 팰리스 팬들은 그의 활약상을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했고 2005년에 라이트를 20세기 최고의 선수로 선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